최근 클라이밍 의류와 장비의 패션 동향을 살펴봅니다
클라이밍은 이제 단순한 취미나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암벽을 오르는 짜릿한 성취감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입고 사용하는 장비와 의류들 역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클라이밍 패션은 눈에 띄게 변화해 왔으며, 그 흐름은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고려한 패션 트렌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클라이밍 패션 트렌드에 대해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기능성과 스타일의 경계가 무너진다
클라이밍 의류는 과거에는 철저히 기능 위주로 설계된 장비의 일환이었습니다. 거친 바위와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내구성, 방풍·방수 기능, 통기성 등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었으며, 디자인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클라이밍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고 이 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면서,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요구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멋져 보이는' 옷을 원한다는 욕구를 넘어서, 클라이밍이 일상과 점점 더 가까워졌다는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클라이밍 짐에서 운동을 마친 후 바로 카페나 일상 생활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클라이밍복은 운동복으로만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웨어러블(wearable)'한 스타일, 즉 도시 환경에서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실용적인 디자인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고, 이를 반영한 다양한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고프코어(Gorpcore)' 스타일의 유행입니다. ‘Good Ol’ Raisins and Peanuts’의 약자인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패션이 단순히 기능 중심이 아닌, 스트릿 패션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한 흐름을 상징합니다. 이는 노스페이스,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같은 전통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들이 일상복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이제 이 브랜드들의 기능성 재킷이나 클라이밍 팬츠는 단지 클라이밍을 위한 옷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도 인식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클라이밍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핏과 재단, 색상과 패턴에서도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어스톤 계열의 컬러(카키, 브라운, 그레이)에 머물던 색상 구성이 보다 대담하고 생기 있는 색으로 바뀌고 있으며, 여성 클라이머를 위한 슬림핏, 하이웨이스트, 브라탑 디자인 등도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활동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의 의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한 결과입니다.
더불어, 협업 컬렉션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 혹은 스트릿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은 클라이밍 의류의 스타일을 한층 더 다양하게 만들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이를 통해 기능성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크테릭스와 자크뮈스, 살로몬과 MM6 메종 마르지엘라의 협업 제품들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급 패션 브랜드 특유의 감성을 입혀 클라이밍계에 새로운 패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클라이밍이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라이프스타일의 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보호 기능을 넘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 시대에서, 클라이밍 패션은 점점 더 그 중요성과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용성과 멋, 기술과 감성 사이의 경계는 이제 흐릿해졌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스포츠 패션’의 정의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소재와 지속가능성, 새로운 선택의 기준
클라이밍은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스포츠입니다. 우리가 밟는 바위, 잡는 크랙, 숨 쉬는 공기까지 모두 자연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클라이머들은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누구보다 크게 느껴야 할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이제 단순한 윤리적 자세를 넘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의류와 장비의 소비에서는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다양한 브랜드들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소재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기존의 합성섬유나 나일론 대신, 재활용 원단이나 유기농 면, 대마(Hemp),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등의 친환경 소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는 오랜 시간 친환경 섬유 개발에 투자해 왔으며, 현재는 자사의 거의 모든 의류에 친환경 인증 원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블랙다이아몬드나 코룬(Korun) 등 다양한 브랜드들도 지속 가능한 생산 체계를 갖추고,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류의 내구성 자체를 높이는 노력도 친환경 트렌드의 일부입니다.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소비 패턴이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벌의 클라이밍 바지를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에는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부품 교체가 가능한 장비를 출시하는 것이 지속 가능성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브랜드 측의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와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많은 클라이머들은 이제 제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가볍고 튼튼한가?’만이 아니라 ‘이 제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함께 고려합니다. 이는 일종의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로, 자신의 소비 행위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움직임입니다.
또한, 클라이밍 커뮤니티 자체에서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각종 자연 보호 캠페인, 리그레드 데이(Leave No Trace Day), 크린 클라이밍 이벤트 등은 자연을 아끼는 문화를 확산시키며, 브랜드 역시 이를 제품 기획이나 마케팅에 적극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라이밍 패션은 이제 단순한 ‘멋’이나 ‘기능’을 넘어서, 내가 지지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고 있으며, 환경을 생각하는 패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젠더리스 디자인과 커뮤니티 중심 트렌드
패션에서 성별 경계를 허무는 흐름, 이른바 ‘젠더리스’ 트렌드는 이제 아웃도어와 스포츠웨어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 의류 또한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며, 특히 젊은 세대와 신진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남녀 공용 사이즈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철학 자체가 중립적이고 유연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클라이밍복은 남성용은 넉넉하고 직선적인 핏, 여성용은 슬림하고 곡선적인 핏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때때로 불편함이나 활동성 저하로 이어졌으며, 개개인의 체형이나 운동 스타일에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구분에서 벗어나,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절제된 디자인과 유니섹스한 실루엣을 채택한 제품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무트(Mammut)’, ‘라스포르티바(La Sportiva)’, ‘TNF’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젠더 중립 컬렉션을 별도로 출시하거나, 모든 라인업을 성별 구분 없이 선보이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젠더리스 흐름은 단순히 스타일 문제를 넘어, 클라이밍 커뮤니티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별, 나이, 체형, 배경을 불문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암벽을 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품으로 전달하는 것이죠. 이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클라이밍 문화를 보다 건강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들은 지역 클라이밍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피드백을 수집하는 방식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클라이밍을 즐기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용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잡는 시도는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일부 브랜드는 유명 클라이머와 협업하여 리미티드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하고, 클라이밍 대회나 자연 보호 활동을 후원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함께 전파하고 있습니다.
결국 클라이밍 의류는 이제 단순한 ‘운동복’을 넘어서, 문화와 철학, 태도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과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반영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재의 흐름은, 앞으로 클라이밍 패션이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게 해줍니다.